만물박사의 궁금증 해결소

   

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다. 책 표지는 되게 투박해 보인다. 하긴 표지 디자인보다 중요한 건 책 콘텐츠인 내용의 질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고전의 냄새가 풀풀 풍기긴 한다. 표지 속 등장하는 표식은 세계 3대 문명권의 대표 종교의 상징 표식이다. 왼쪽이슬람 문명권반월 초승달 문양, 가운데동아시아 문명권태극문양, 오른쪽서구 문명권십자가 문양이다. 그건 그렇고, 책이 일관되게 재밌는 것 같진 않다. 처음엔 '어떤 대단한' 세계 문명을 바라보는 '혜안'이 담겨있을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목적이 있다.

 

 여느 추천되는 고전 책들이 으레 그렇듯 (저명한 인사의) 추천사, 몇 판을 거듭한 것을 증명하는 긴 분량의 서문 등 처음부터 정독해 들어가면 그리 쉽지는 않다.. 본 필자는 새뮤얼 헌팅턴의 고견, 혜안을 꼭 알고 싶었기 때문에 꾹 참고 긴 호흡으로 야금야금 읽어나갔다.

 

<문명의 충돌><<포린 어페어스>>라는 미국외교협회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의 '1993년 여름호'에 발표된 데서 파생된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독창적인 이론은 그 영향력이 파급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과 이슈를 잉태한다. 오늘날 상식적으로 평가한다면 1989년에 일본계 미국인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발표한 이전의 저명한 논문인 <역사의 마지막>을 반박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훗날 2001년 미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던 9.11 테러나 그에 대한 후속 조치인 아프가니스탄(테러 배후로 주목받는 오사마 빈 라덴의 근거지), 이라크 침공을 예견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참고로 포린 어페어스는 포린 폴리시와 반대로 미국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헌팅턴 역시 미국 보수학계의 대표 주자이다. <문명의 충돌>의 핵심은 이 당시까지만 해도 국가 간 무력 충돌이나 갈등은 자유민주주의 대 사회공산주의라는 두 거대 이념의 대립의 장으로 인식하던 것을 새롭게 기존 냉전 이념에 기반한 것이 아닌 그에 따르면 7, 8개의 문명권의 오랜 전통, 다양한 문화와 종교적으로 발생하는 차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앞선 포스팅인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런 헌팅턴을 비판한 입장(스탠스)였다)

 

 이 책을 읽어본 경험상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기본 배경지식과 세계 정치를 조망하는 높은 수준의 이해력이 필요하긴 한 것 같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호흡이 달리면서 읽기가 버겁고, 재미도 떨어지는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흥미 감소 요인의 까닭은 보통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다고 느끼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분쟁과 과거 첨예한 이슈였던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의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종교적, 민족적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이 난마처럼 얽혀있기 때문에 <문명의 충돌>에서는 이 분쟁 양상을 많은 양을 할애해 기술(description)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양을 할애한 그 이유를 알고서 책을 읽게 된다면 세계 정치의 지정학적 측면 문명 단층 경계선의 지속적 분쟁 원인을 조금이라도 이해가 된다면, 크게 지루함 없이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문명권이라는 거대한 체제와 질서라는 담론 속에서 '문명권'의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문명 간의 충돌의 문제를 푸는 데는 쉽지 않고 복잡한 모순이 있어서 하나의 대표적 사례를 상정해 그것을 심도 있게 풀어보는 지혜가 필요했다. 그 대표적 사례라는 게 예의 바로 그 중동과 고 유고연방의 사례문제가 될 것이다.

 

 본 필자의 높지 않은 사유의 수준에서 이러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고, 추천사의 한 역사학자 분의 말씀대로 시대를 뛰어넘는 이 책의 통찰을 느껴본다면 언젠가 다시금 책을 한번 더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P.S) 국제 정치에 대한 <문명의 충돌>과 같은 류의 책을 찾는다면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도 참고할 만하다. 모두 20세기 말 격동의 시대 미국소련의 동서냉전이 첨예하게 맞서다 소련의 해체 이후 출간된 저작들이다.

 

 

 


 

 

혼돈의 세계

 

 '미국 외교정책의 최고 싱크탱크',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영리 독립 외교정책단체이자, 외교 문제의 최고 권위지인 Foreign Affairs를 발행하는' 등 수식어가 붙는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 회장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재임 중인 리처드 하스의 책이다. 그의 주요 경력을 대충 보면 지금의 외교협회 협회장을 포함해 조지 H. W. 부시 행정부(아버지 부시) 백악관 특보 및 국가안보회의NSC 중동 및 남아시아 지역 담당 선임보좌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아래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다.

 

 책은 읽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 논문 수준의 책이 아니고, 위에 언급된 포린 어페어(국제관계 평론잡지) 17/1-2월 호(격월로 발행)에 게재된 저자의 기고문 <세계질서 2.0: 주권적 의무에 관해>를 좀 더 발전시킨 내용이라고 역자 후기에 언급돼있다. 또한 대중 독자를 위해 쉽게 쓰인 측면도 있다.

 

 기고문 제목이 빨리 와닿지 않으면 "한 국가의" 주권적 의무에 관해로 알면 될 듯. 이에 대한 내용은 310장부터 제법 일정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주권적 의무'에 대해 논의를 집중, 심화시켜 나간다.

 

 개인적으로 포린 어페어, 포린 폴리시 두 매체가 헷갈렸는데 포린폴리시(FP)는 사무엘 헌팅턴 등의 주도로 창간되어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와 함께 외교전문지의 양대 산맥으로, 포린 어페어스가 미국 정재계 등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면 FP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혼돈의 세계>의 목차는 매우 쉽다. 과거, 현재, 미래. 제목에서 암시하듯 저자는 양차대전(20세기 전반)과 이후 냉전, 그리고 그 이후 25년을 이야기하며, 현재가 포함되는 그 이후 25년의 국제질서 내지 세계질서를 말하면서 부연설명이 필요한 일종의 '무질서disarray'로 규정한다.

 

 

 앞서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 것은 개념과 용어를 외교적 용어, 정치적 용어처럼 학술적으로 구분해 사용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로즈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서 철학으로 석박사를 수학한 저자의 자기만의 스타일이 묻어난 책이기 때문이며, 우리나라 국내에 전해진 미국 외교가에서 들려 전해온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는 사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은 이후 계속되는 핵실험 도발과 위협으로 국내 분위기가 무관심 내지 무던함과 불안감이라는 양극단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국제사회에서도 고조되는 분위기 조성 중이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일말의 관심에서라도 읽으려는 마음자세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 + 4년 전에 작성한 서평이라 그 당시 북핵정세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으면 될 것이다 )

 

 그리고 <혼돈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모 일간지에서 저자가 대표로 있는 외교협회가 연차 보고한 국제사회의 위협과 분쟁 가능성 이슈를 다룬 기사가 전하듯 북한의 핵도발, 위협을 비중 있게 말한 대목이다. 책 내용을 한 번 더 자세히 읽어보면 정리가 되겠지만, 대충 내 기억에 의지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책 내용은 17세기 유럽에서 시작한다. 거기에 본인의 알량한 역사 지식을 더해 재구성해보면, 유럽 전역의 치열하고 극심한 30년 전쟁이 끝난 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오늘날과 큰 차이가 없는) 국가 간 경계선이 획정되고, 국가 주권이 국제적으로 확립되어 통용 내지 영토주권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기 시작하는데. 그 이래로 이 국제적 체제가 오래 유지되다가 20세기 양차대전(원인은 특정할 순 없지만 참고로 저자는 나름의 설명으로 분석한다)으로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다.

 

 

 핵심적 전략무기 ''무기가 등장하면서 UN창설과 상임이사국 등으로 구성된 안보리 등 과 관련한 UN의 쟁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 뒤 합법적 핵보유 지위국(5개국)NPT에 미가입해 핵 개발한 그에 준하는 핵보유국에 '북한'도 언급한다. 논의를 더 나아가면 한국, 일본의 자체 핵무장 필연 가능성 및 미국이 대중 관계라는 큰 틀에서 북한을 관리하고, 북한 오판 포함 중국이 잘 상황 판단하길 원하는 입장인 듯하다. 이 대목이 불편한 독자도 있을 것이나 더 중요한 것은 예컨대 급변사태라던지 일단의 사건 발생 이후 남겨진 핵물질, 무기를 누구보다 먼저 장악하는가 하는 핵심 사안을 더 집중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중국 참여를 상수로 생각하는 듯하다.

 

 한편 서구인적 시각에서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 과거의 역사적 선례(대표적으로 십자군전쟁)도 있고 해서 지리적으로 가깝고 지정학적으로 밀접한 중동지역의 정황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혼돈의 세계> 역시 중동, 발칸반도, 대 러시아 문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